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8162190
스마트폰의 등장은 사회를 변화시켰고, 여행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역사에는 이정표가 있다. 이정표를 전후로 정치, 사회, 문화는 크게 변한다. 21의 이정표가 되는 사건은 무엇일까. 아마 2009년 아이폰 출시를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폰을 시작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고 그 영향력은 아직도 지속된다.
스마트폰 시대의 여행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여행의 준비가 변했다. 유심칩 또는 포켓 와이파이가 여권 못지않은 필수 준비물이 되었다. 사실 여행의 시작과 끝이 모두 스마트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항공권 구입은 스카이스캐너에서, 호텔 예약은 호텔스 컴바인에서, 환전은 토스 모바일 뱅킹을 사용하고, 여행에 대한 정보는 여행 책자 대신 인터넷 블로그를 참고한다.
스마트폰 없는 "길을 잃어버린" 시칠리아 여행기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시칠리아 여행기를 담고 있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 경험한 마지막 여행"이다. 구글맵 대신에 여행 책자 지도를 사용하고, 호텔스 컴바인이 아니라 호텔 전화번호로 숙박을 예약하는 여행이다. 길은 잃는 것은 일상이고, 교통수단을 제대로 타기 어려우며, 새로운 도시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발품을 팔아 숙박할 곳을 찾는 일이다.
스마트폰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준다. 전 세계를 구석구석 알려주는 구글맵은 목적지까지의 길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심지어 어떠한 교통편을 타아하는지, 그리고 언제 도착하는지까지 상세히 안내한다. 숙박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호텔을 비교하여 최저가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은 여행 경비를 줄이는데 기여한다. 좋은 호텔을 싸게 얻는 것만큼 여행을 즐겁게 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이전 선배 여행자들로부터 얻은 여행 팁은 블로그를 통해 널려있으며 이 중 자신에 마음에 드는 일정을 소화하면 "실패하지 않는" 여행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 "실패하지 않는" 여행이다. 스마트폰은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여행"을 넘어서 "실패하지 않는 여행"을 만들어준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여행하는 건데 누구도 실패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장 좋은 곳을 보고,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편리하고 불편함 없이 여행 경험을 쌓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여행자의 본모습일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행자 = 이방인
이방인이 마을 초입에 들어온다. 자신이 발을 디딘 곳에 대한 정보가 없다. 주위의 현지인들은 그 또는 그녀를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그냥 지나가는 것인지, 혹은 목적으로 가지고 마을에 방문한 것인지 경계를 풀지 않는다. 이방인은 사회에서 비주류이고 낯선 존재이다. 원주민들은 이방인을 경계하고 그러한 경계 속에서 이방인은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그리고 위험이 닥쳐올 때 이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여행자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이방인과 같다. 여행자도 이방인도 자신이 서 있는 땅에 대한 정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잃기도 하고, 갈등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모르고 한 행동이 지역의 규율에 위반한 것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여행자에 대한 경계심은 강화될 수 있다. 여행자는 언제나 위험에 처해있다. 잘 맞지 않는 음식과 물, 낯선 기후와 같은 새로운 환경은 여행자를 지치고 아프게 한다. 지치고 아플 때 병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여행자이다.
이방인으로서 여행자의 신세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위협을 경계하기 위해 여행자는 주위에 민감해진다. 한껏 예리해진 감각으로 자신과 주변을 살핀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감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받은 도움의 손길에도 큰 감사를 느낀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받는 도움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진다.
결국 여행자의 이미지는 이방인으로서 그 사회는 잘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부딪히는 사람이다. 한껏 긴장한 상태에서 민감하게 주변을 인식한다.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사가 넘친다. 어려운 환경에서 받은 도움의 손길이 여행을 아름답게 추억하도록 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 똑똑한 이방인이 되었다.
스마트폰 이후의 여행에서 우리는 아직도 지역에 대해 무지한 이방인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이방인이라는 속성은 변하지 않지만 너무 "똑똑한 이방인"이다. 지역에 대해 많은 정보로 무장하고 있다. 가는 곳이 명확하고 그리고 가는 방법 역식 정확하다. 헤매고 방황하는 일 없이 일정을 수행해 나간다. 당연히 위험 부담은 최소화된다.
똑똑한 이방인은 일단 걸음걸이부터 자신감이 넘친다.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해 간다는 확신에 찬 발걸음이 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실수할 가능성도 적고 위협을 피할 줄 안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만이 남는다. 자연스럽게 경계심은 줄고 긴장할 피요가 없으며 우연한 도움에서 오는 감사보다는 확실한 경험을 얻는데 집중한다.
결국 여행이 너무 쉬워졌다. 여행의 과정도 그리고 성공적인 여행을 위한 과정도 너무 쉬워졌다. 그래서 이방인이 사회의 주류인 관광국가, 특히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가도 생겨난다. 여행객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지역 사람들은 여행객은 배척하게 되고 그들만의 장소로 숨어든다. 문제는 똑똑한 이방인은 그러한 곳을 찾아서 정보를 널리 알리는 관대한 이방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결국 여행자에 의해 지역 주민이 비주류가 되고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
지금의 시칠리아는...
스마트폰에 의해서 여행이 바뀐 것 자체는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누구나 여행을 즐기고 그 안에서 안전하게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여행에 대한 패러다임이 스마트폰에 의해서 변화된 지금 작가가 시칠리아를 다시 간다면 어떠할까. 스마트폰 이전의 마지막 여행을 한 작가가 스마트폰과 함께 시칠리아를 다시 본다면 어떠할까. 시칠리아를 향해 한 '다시 보자는 인사'가 이루어지는 날을 괜스레 기대한다.
'책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클래식과 소설 - 언제까지나 쇼팽 (0) | 2020.10.02 |
---|---|
도망치지 말고 싸워라 - 안녕, 드뷔시 전주곡 (0) | 2020.09.30 |
인연, 우리는 사실... - 거울 속 외딴 성 (0) | 2020.09.29 |
[호밀밭의 파수꾼] 어느 중2병의 일기장 (0) | 2020.07.22 |
성장통을 겪는 로마 -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 (시오노 나나미) (0) | 2020.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