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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호밀밭의 파수꾼] 어느 중2병의 일기장

논란의 책, 호밀밭의 파수꾼 

미국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며 '소나기'이다. 그만큼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접하게 되는 필수 교양 문학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문학 내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묘사, 주인공의 비행은 과연 '교과서 문학'으로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평가가 어떻든 간에 호밀밭의 파수꾼은 많은 이들이 읽고 논쟁하는 그야말로 '서울대 선정 100대 도서'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순수함을 지키는 파수꾼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는 이들의 핵심은 바로 주제 의식이다. 위선과 거짓이 정상인 세상에서 홀로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10대 소년 홀든의 비행은 처절한 투쟁으로 보인다. 호밀밭의 파수꾼 역시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는 호밀밭은 단 두 장면에서 언급된다. 심지어 호밀밭의 파수꾼은 전체 소설에서 단 한 장면에서만 나타난다. 소설의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박하다시피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등장하는 그 장면은 이 소설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홀든 콜필드의 사랑스러운 동생 피비와의 밀회(?)에서 그는 그가 되고 싶은 소망을 힘겹게 드러낸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이 절벽(호밀밭에 왜 절벽이.......)으로 떨어지지 않게 지켜주는 일. 이는 어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이들을 구원하여 그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홀든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세상만사 불만인 그냥 어른 인척 하는 중2병 환자

사랑하는 동생 피비 앞에서는 아이의 순수함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순수하고 이상적인 홀든은 피비가 없는 곳에서는 그냥 세상만사 불만인 중2병 환자이다. 심지어 어른들의 위선은 싫다면서 흰머리를 앞세워 어른인 척 술을 마시기도 한다. 룸메이트의 색골 기질을 싫어하면서 정작 외로움에 창녀를 부르기도 한다. (물론 바로 후회하고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외로운 홀든

중학생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에는 욕설과 자극적인 상황들에 집중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홀든의 지루한 내면 묘사는 가볍게 건너뛰었기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단어는 소설에서 본 기억도 없다. 사실 이렇게 자극적인 소설이 왜 세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는지 의아할 때이다. 

 

어쩌다 다시 집어 읽게 된 호밀밭의 파수꾼. 다시 본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는 홀든을 이해함과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중2병의 소년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세상에 화를 내고 싶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다. 친구나 선생은 이러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 나만 혼자가 된 느낌이다. 그래서 외롭다. 술에 취한 홀든이 '외롭다.'라고 말할 때, 사랑하는 남동생을 떠나보내고 4번의 퇴학으로 학교에서도 자리 잡지 못하는 소년의 외로움이 절절히 느껴진다.

 

그가 파수꾼이 되어서 절벽에 떨어지는 아이들을 지켜주겠다고 한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일 수도 있지만, 그의 외로움을 떨쳐내고 싶은 것 아닐까. 홀든은 여동생 피비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좋아한다. 어른들과 친구들은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기껏해야 "아빠가 오빠를 죽일 거야!"라고 소리치지 잘잘못을 따져 묻지 않는다. 홀든은 이러한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것이다. 지켜주겠다는 명분으로 그는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