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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노병은 죽지 않는다. -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의 리뷰입니다.

소설의 내용을 일부 언급하므로 스포일러를 완전히 피하고 싶으시면 소설을 먼저 읽길 바랍니다.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은 작가의 소설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시즈카 유니버스와 겐타로 유니버스를 결합해 거대한 나카야마 월드를 구축하였다. 5편의 단편에서 이성을 중시하는 도쿄 사람 고엔지 시즈카와 만사 감정적으로 폭주하는 나고야 사람 고즈키 겐타로가 사건을 해결한다. 사회적인 문제를 소설에 잘 녹여내는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도 중간이윤, 투자 사기, 불법체류, 치매, 마약과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등장시켰다. 이러한 이슈들이 사건의 배경이자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소설의 핵심 키워드는 '노인'이다. 시즈카와 겐타로는 지금까지 본 추리 소설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탐정 콤비이다. 하지만 그들의 직관과 행동력(특히 폭주하는 겐타로의 과감함)은 경찰보다 앞서며 사건 해결의 핵심이 된다. 노인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인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투자 사기, 치매 노인과 가족의 고충을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일 수 있었던 것은 나이 든 탐정을 소설의 전면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노인이 소설 전면에 배치됨으로써 캐릭터성이 부여되었다. 기존의 노인은 '무기력', '민폐', '고집'이라는 개념으로 몰개성화되었다. 소설 속에서 노인은 항상 무기력하게 있거나 고성을 즐기며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인물이었다.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이 아니다. 모두 개성을 가진 '인간'이다. 같은 노인이지만 이성을 앞세워서 차분히 생각하는 시즈카와 폭주하는 겐타로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다. 이처럼 입체적 노인 인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노인에 가지고 있던 기존의 생각을 비튼다.

 

"노화는 누구에게든 찾아와요. 그러니까 청년. 당신과 옆에 있는 아가씨도 언젠가 늙어요.

예순다섯 살이 되었을 때 당신들이 솔선해서 이 나라에서 나가 주겠어요?"

 

소설뿐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개성을 상실시키는 경우가 상당하다. 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노인을 몰개성화시킨다. 노인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노인 역시 인간으로서 개성을 지닌다는 생각을 일깨운다. 노화는 누구에게든 찾아온다. 하지만 늙는다고 해서 개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때로는 침착하게 때로는 폭주하면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