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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당신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 리뷰입니다.

* 표시에 대한 주석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줘"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코지 미스터리(가볍고 편안한 추리물)이다. 경시청 수사 1과 형사 가쓰라기, 법대생 마도카, 전진 판관 시즈카가 해결하는 5+1편*의 사건을 엮어놓았다. 애거서 크리스트의 미스 마플 형식을 따라서 시즈카는 현장에 나가지 않는다.** 대신 마도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마도카와 가쓰라기의 연애가 그려진 소설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 비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마도카와 시즈카의 대담에서 나오는 법과 정의의 문제는 소설을 쉽게 볼 수 없게 만든다.

 

살인자는 정의롭다. 다소 불쾌한 말이지만, 살인자는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사람을 해친다. 살인자에게 피해자는 '나쁜 사람'이다. 조직의 안녕을 위해서, 복수를 위해서, 꿈을 위해서 상대방은 걸림돌이다.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죽어야 한다. 법은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무엇이 정의인지 판단한다. 피의자의 정의가 법에서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는지 결정한다. 재판관은 살인자의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말하며 형을 집행한다.

 

하지만 재판관은 사람이기 때문에 틀린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재판관의 안위가 판단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스라엘 가석방 재판을 분석한 결과 점심을 먹거나 휴식을 취한 이후 행해진 재판에서 가석방 확률이 65%에 이르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가석방 확률이 떨어지다가 다시 휴식을 취한 이후에 상승한다. 또한 재판관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있고, 때로는 자신의 정의에 반하는 판단을 주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관은 단련해야 한다. 자신의 정의를 앞세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에 절대적인 신뢰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판단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이를 인정하는 용기를 말한다.

 

"그럼, 할머니는 정의를 뭐라고 생각해?"

"그거야 간단하지." 당연히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즈카는 선뜻 대답했다.

"정의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 굶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빵을 나눠주는 일이지. 정의는 그걸로 충분해."

너무나도 싱거운 대답이라 반론하려 했지만, 확실히 정의는 그것만으로 필요충분하다.

 

살인자도, 재판관도 모두 자신의 정의를 가진다. 사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정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당신의 정의는 무엇인가. 돈, 명예, 행복과 같은 추상적이고 거대한 정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즈카 할머니와 같이 굶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빵 한 조각 같은 정의도 소박하고 유치하지만 필요충분한 정의 아닐까.

 

 

 

 

 

* 소설은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6개의 사건이 있다.

** (반전) 시즈카는 현장에 나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