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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즐거운 침범 - 이중 도시

차이나 미에빌의 장편 소설 '이중 도시'의 리뷰입니다.

 

신원 미상의 시체가 공터에서 발견되었다. 베셀의 형사 티아도어 볼루 경위는 해당 사건이 단순 살인 사건을 넘어서 '침범' 행위가 연루된 중차대한 사건이라고 판단한다. 배후에 전설 속 도시 '오르시니'가 있다는 증언까지 더해지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오르시니', '침범'과 같은 단어들이 눈에 띌 것이다. '오르시니'는 고유 명사이므로 소설 속 도시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침범'은 무엇이며, '침범' 행위가 왜 중차대한 사건인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중 도시 베셀과 울코마의 특이한 성질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베셀과 울코마는 '이중 도시'이다. '이중 도시'는 지리적으로 동일한 장소를 공유하지만, 완전히 다른 상태의 도시를 의미한다. 이러한 도시 설정은 평행 우주 개념을 떠오르게 만든다. 동일한 장소이지만 다른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 하지만, 베셀과 울코마는 평행 우주보다 상황이 복잡하다. 두 도시는 서로 완전히 독립되지 않으며 교차 상태에 있다. 즉 베셀에서 울코마의 사람을 볼 수 있고, 울코마에서 베셀의 사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볼 수 있다고 인사를 하거나 알은체를 해서는 안 된다. 두 도시는 엄연히 독립된 국가이기 때문에 베셀에서 울코마(혹은 울코마에서 베셀)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도시의 존재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를 '침범'이라고 부른다. 두 도시에는 이러한 침범 행위를 감시하고, 침범 행위가 발생하였을 때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감시 기구 '침범국'이 존재한다.

 

교차는 교차로(좌)와 융합은 로터리(우)와 닮아있다.

소설의 핵심은 '교차'이다. '교차'는 '융합'과 다르다. 대상이 융합하는 것은 대상이 섞이면서 새로운 대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반면 대상이 교차는 대상의 원래 속성을 유지한다. 비유하자면 융합은 로터리와 같고, 교차는 교차로와 같다. 두 도로가 만나서 생기는 로터리는 연결되는 도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모형의 도로이다. 하지만 교차로의 교차 지역은 새로운 모형의 도로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도로에 속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가로로 긴 도로를 기준으로 보면 교차 지역은 가로로 긴 도로에 속하지만, 세로로 긴 도로를 기준으로 본다면 교차 지역은 세로로 긴 도로에 속한다. 베셀과 울코마 두 도시 역시 지리적으로 동일하지만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보는지에 따라서 다른 도시가 된다. 베셀의 관점에서 교차 지역은 베셀 영역이지만, 동일 지역이라도 울코마의 관점이라면 울코마 영역이다. 두 도시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관점 중 하나의 관점을 취사선택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이를 잘못 수행하면 침범이 될 수 있다.

 

교차는 소설 자체에도 영향을 준다. 소설의 장르 자체가 교차의 성질을 가진다.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와 판타지 장르가 교차한 결과물이다. 소설은 두 장르를 결합하였지만 철저하게 두 장르의 독립적인 영역을 보존한다. '이중 도시' 개념은 분명 판타지적 요소이다. 하지만 사건 해결의 관점에서 '이중 도시' 소재는 많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사건이 발생하고, 단서를 찾아 추리하는 과정은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이다. 특히 권력 집단 간의 정치적 갈등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소재로서 해당 소설이 판타지라는 것을 망각하게 한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읽으면 판타지 소설이 되고,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라고 읽으면 미스터리 스릴러가 되는 매력적인 교차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베셀 역사 기간 내내 가장 일반적인 시설의 형태는 되플리르 카페였다. 되플리를 카페란 무슬림 커피 가게 겸 유대 커피 가게를 일컫는 말로, 임대도 따로 하고, 계산대와 주방도 별개이며, 각각 이슬람 율법에 맞는 요리인 할랄과 유태 율법에 따르는 요리인 코셔를 팔되 점포 이름과 간판과 식탁은 공유하고 둘을 가르는 벽도 없는 형태를 말한다. 양자가 섞여 있는 손님들은 가게에 들어와 주인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앉아 있다가 정확히 자신과 관련된 측에서 허용한 음식만 구매하는 공동체 줄에 나눠 섰다. 그런 율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손님은 그 사실을 과시하면서 둘 중 한쪽이나 양쪽 모두에게서 음식을 샀다. 되플리르 카페가 하나의 점포냐 두 개의 점포냐 하는 문제의 답은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달랐다. 재산세를 부과하는 공무원은 늘 하나의 점포로 취급했다.

 

베셀에 있는 카페를 묘사한 글이 마치 소설 속 도시의 모습을 축약한 것과 같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독립된 관습을 보장받는 유태인과 무슬림에서 베셀과 울코마가 떠오른다. 소설을 읽는 우리는 두 도시를 침범한다. 자유로운 손님으로서 우리는 베셀과 울코마를 모두 바라보면서 사건 해결을 따라간다. 그래서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 작가가 이끄는 대로 즐거운 침범을 하기 바란다.